소름 돋는 연출, 루신다의 예언
노잉은 2009년에 개봉한 SF 재난영화로 당시의 나에게는 큰 충격을 준 작품이다. 상영등급은 12세 이상이었지만 당시의 정말 그 나이대였던 내가 보기에는 조금 무서운 영화가 아니었나 싶다. 이 영화는 1959년, 어느 초등학교에서 학교의 개교를 축하하며 50년 뒤의 후배들에게 전할 타임캡슐을 묻는 이벤트로 시작한다. 모두가 자신이 상상하는 미래의 모습을 그려낼 때 ‘루신다’는 종이에 이상한 숫자를 빽빽하게 써내려간다. 나는 1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 장면을 잊지 못한다. 정말 소름 그 자체였기 때문에. 그리고 루신다는 어딘가로 사라진 뒤 학교 지하 체육창고에서 발견되고, 무언가 공포에 질린 채 자신의 손톱으로 문에 숫자들을 새기며 ‘그것’을 막아야 한다고 반복적으로 말한다. 정말 소름 돋는 장면이었다.
그리고 50년의 시간이 흘러 2009년, 주인공 존의 아들 캘럽이 다니는 초등학교에서 개교 50주년을 맞아 타임캡슐을 여는 행사를 진행했고, 여기서 캘럽은 50년 전 루신다가 적어 놓은 숫자들이 적힌 종이를 받게 된다. 캘럽은 그 종이를 집으로 가져가고 그 종이를 보게 된 존은 그 숫자들이 날짜들을 의마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 날짜를 검색해보니 모두 각종 재난과 사건을 가리키고 있었고, 피해의 규모까지 종이에 기록된 것과 정확하게 일치했다. 즉, 루신다는 모든 것을 정확하게 예언한 것이다.
노잉의 현실가능성
아무래도 어린 나이에 이 영화를 접했기 때문일까. 나에게는 모든 장면이 현실적으로 다가왔다. 실제로 지구가 멸망할까봐 매일 같이 그 날짜를 세고 매일 밤 꿈에 그 장면이 나올 정도였으니. 정말 그 날짜에는 밤에 잠을 자지 못하고 소리를 지르고 숨을 거칠게 내쉬었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멸망이지 않나 싶은 것이다. 실제로 태양에서 발생한 초대형 슈퍼 플레어가 지구를 덮치게 되려면, 슈퍼 플레어가 일어나기 위한 조건으로 태양 주변 100만km 이내에 목성 수준의 행성이 있어야 하며 항성과 항성 주위를 공전하는 행성의 자기장이 연결되었다가 끊어져야 한다고 한다. 즉, 현재 태양계 내에서 슈퍼 플레어가 일어날 확률은 0에 수렴한다. 또한 플레어는 지속적으로 방출되는 것이 아닌 순간적인 방출이고 지구에 영향을 미치기 위해서는 그 거리가 상당 수준 가까워야하므로 그 세기가 약해져 지구상의 모든 것이 한 번에 소멸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부분이 아니더라도 예언이라는 측면 자체가 현실적으로 보기 어려운 것도 있다. 믿느냐 마느냐는 사람마다 다르고, 영화에서는 예언이 정말 100%의 확률로 정확한 설정이었지만 현실은 좀 다르다. 물론 어린 시절에는 유명한 예언가라는 사람이 예언을 하면 정말 그대로 다 이루어지는 줄로만 알았다. 그래서 영화와 현실을 구분하지 못한 것도 있는 것 같고. 하지만 지금은 시대도 달라졌고, 유명한 예언가들의 예언이 여전히 심심찮게 들려오지만 영화처럼 백발백중 맞추지는 못한다는 걸 알고 있으니, 두려워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만약, 지구멸망의 미래를 알고 있다면
만약 내가 주인공이었다면, 아들이 가져온 종이에 적힌 숫자의 의미를 알게 되었을 때 얼마나 소름이 돋았을까. 그 장면을 보기만 해도 소름이 돋는데 정말 그게 현실이었다면? 그리고 종이 마지막에 적힌 숫자 33이, 33이 아닌 EE, 즉 Ever yone Else 라는 것을 알았을 때 어떤 감정이었을지 상상조차 되지 않는다. 아니 상상하고 싶지 않다. 인류 전체가 사라진다는 것을 내가 알고 있다 해도 누구한테 이야기 할 수 있을까. 그런 종이에 적힌 숫자들을 증거라고 내세워봤자 아무도 들어주지 않을 것이고 그저 나를 이상한 사람 취급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것이 정말 다가올 현실이라고 믿기에 1분1초가 그저 불안할 것이다.
우리는 자주 이야기 한다. “내일 지구가 사라진다면 넌 무엇을 할래?” 혹은 “만약 네가 1시간 뒤에 죽는다면 무엇을 할래?” 와 같이. 생에 마지막에 하고 싶은 것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스피노자는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고 이야기 했고, 누군가는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시간을 보내겠다고, 또 누군가는 맛있는 음식을 먹겠다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나는 평소에 사랑하는 사람들과 시간을 함께 보내겠다고 하며 그 사람들은 누구일지 머릿속으로 그려보고는 했다. 하지만 이 영화를 보며 정말 그러한 상황이 다가온다면, 그 사실을 미리 알고있다면, 적어도 몇 시간은 패닉에 빠져있을 것이라고 장담한다. 이 영화의 주인공 또한 그러했지만 결국 마지막은 사랑하는 가족들과 함께한다.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그대로 받아들인다.
자연과 우주의 섭리 앞에서 인간은 너무나 나약하고 무력하다. 그렇기에 우리는 어떻게 다가올지 모르는 미래에 대해 두려워하지 않고, 언제 떠나도 괜찮을 정도로 매일을 후회 없이 살아가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