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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겐 너무 소중한 너> 장애에 대한 공감과 노력

by 윤리드 2024. 1.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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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시놉시스

소통을 위한 노력에서 시작된 기적과도 같은 이야기! 사무실도 없고 가진 건 달랑 중고 승합차 한 대와 빚뿐인 식엔터테인먼트 대표 재식. 어느 날 그의 밑에서 일하는 내레이터 모델 지영이 갑작스레 숨지는 사고가 발생한다. 지영에게 빌려준 돈을 회수하지 못할까 불안해진 재식은 죽은 지영의 집을 찾아갔다가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시청각장애 아동인 지영의 어린 딸 은혜와 마주치게 된다. 지영의 집에 걸린 보증금을 수중에 쥐면 빌려준 돈도 회수할 수 있겠다고 생각하는 재식은 하루빨리 지영의 전세보증금을 가로채기 위해 마음에도 없는 은혜의 보호자 행세를 자처한다. 그렇게 시작된, 혼자인 재식과 혼자된 은혜의 동거! 그러나 아이와 함께 살기를 만만하게 봤던 탓일까.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아이의 장애 때문에 기본적인 의사소통조차 전혀 이루어지지 않는 그들의 동거생활은 불편함 그 자체다. 특히 쥐뿔도 없는 주제에 유별난 결벽증의 소유자인 재식과 뭐든 손으로 만져야만 하는 시청각장애아의 동거는 참으로 괴롭기 짝이 없다. 재식은 불편함을 줄이기 위해 은혜와 소통을 해보기로 한다. 재식과 은혜는 손끝으로 대화를 시도하면서 점차 특별한 관계로 발전해 가는데...! 소통을 위한 노력으로 일궈낸 기적에 대한 이야기!

 

나는 과연 살아갈 수 있을까 : 장애에 대한 공감

우선적으로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주인공 ‘은혜’ 역을 맡은 아역배우가 연기를 정말 잘했다는 것이다. 시청각장애인에 대해 잘 모르고 사실 주변에서 시청각장애인을 마주할 일이 많지는 않은 것 같다. 아니 어쩌면 내가 이렇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감사한 일일 것이다. 세상을 살아가는 데에 있어 보고 듣는 것은 정말 소중하고, 어느 하나라도 없는 불편함은 감히 상상할 수조차 없다. 지금 당장 내 눈앞이 보이지 않는다고 가정해 보자. 나는 과연 무사히 일상생활을 할 수 있는가? 집에서 한 발자국 나가는 것도 두려워지고, 집 안에서조차 한발 한발 내딛는 과정이 고난일 것이다. 그럼 이번에는 갑자기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고 가정해보자. 물론 글로 대화할 수 있겠지만, 평생 아무 소리도 듣지 못하는 고요함 속에서 산다면 나는 미치지 않을 수 있을까? 둘 중 어느 하나라도 없다는 상상만으로도 이토록 불편하고, 끔찍하며 고통인데 둘 중 하나도 아닌 시각장애와 청각장애를 모두 가지고 있는 아이는 세상을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이 영화의 주인공 ‘은혜’는 선천적으로 장애를 가지고 태어났다는 설정이다.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불행이라 할 수 있는데 어머니는 빚만 남기고 죽었고 아빠라는 사람은 도망갔다. 앞도 보이지 않고 귀도 들리지 않는 아이가 그저 방 안에 홀로 남아 얼마나 무서웠을지. 그리고 은혜의 어머니의 회사 대표 재식은 전세금을 노리고 은혜의 아빠인척 접근했다. 어쩜 이런 영화는 항상 처음부터 좋은 의도인 사람은 없는 걸까 하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역시나 클리셰다. 결국 그는 좋은 아빠가 된다. 처음 의도는 어떠했을지언정 은혜와 함께 생활하고, 은혜가 처한 상황을 마주하면서 은혜가 점점 마음을 여는 것을 보며 그도 점점 마음을 열고 성장해 나간다.

 

시청각장애인의 현실 : 우리가 할 수 있는 노력

이 영화의 전개 중, 가장 내 뇌리에 박힌 장면은 시청각장애인의 경우 시청각장애 교육을 둘 다 받을 수 없고 그중 한 가지만 선택해 교육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이 영화에서 은혜의 경우 시각장애인으로 등록이 되어있어서 시각장애교육만 받을 수 있고 청각장애교육은 별도로 진행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자 대식이 하는 말이 압권이다. “애가 수화는 보이지도 않고, 말은 들리지도 않는데?” 맞는 말이다. 시청각장애인데 어떻게 둘 중 한 가지만 교육을 받을 수 있는가? 시각장애교육은 말로 설명할 것이고 청각장애교육은 볼 수 있다는 가정 하에 진행될 것인데. 이토록 당연한 사실이고 시청각장애교육은 당연히 필요하다는 것이 명백한데도 왜 아직 우리나라는 관련 법률이 아직도 통과되지 않고 있는 것일까? 정말 암담하다.

한 시청각장애인은 이렇게 말했다. “가족과 같이 있어도 혼자 감옥에 갇혀있는 것 같다.” 이 문장 하나만으로도 시청각장애가 얼마나 답답하고 외로울지.. 시청각장애는 시각장애와 청각장애를 더한 장애가 아닌 새로운 유형의 장애이다. 하지만 대중의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다고 관련 법안이 통과되지 않는다는 것은 정말 말도 안 되는 것이다. 우리는 언제 어떤 형태로든 갑작스럽게 장애를 갖게 될 수 있다. 비록 현재 대중의 관심이 없을지언정 사람이라면, 이러한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그저 외면하고 공감하지 못할 리 없다.

나 또한 우리나라의 실태가 어떠한지, 시청각장애인들 뿐만 아니라 모든 장애인들이 얼마나 차별받고 있는지, 간단한 교육조차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까지 정확히 알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특수교육에 대한 수업을 듣고, 이러한 영화를 보고, 실제로 주변에서 장애인 관련 기관에서 일하는 지인을 보면서 조금씩 관심을 갖고 찾아보게 되었다. 그렇게 알아갈수록 이러한 우리나라 실태가 황당한 것인지, 이렇게 중요하고 필요한 법안 하나조차 관심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통과시키지 않고 있다는 점이 얼마나 무지한 것인지 모르겠다.

재작년, 장애인단체의 지하철시위로 한바탕 이슈가 되었다. 지금도 장애인을 검색하면 연관검색어로 바로 장애인 지하철 시위가 나타난다. 물론 그 부분은 시민들의 안전, 출퇴근 시간 등을 침해하고 본인의 권리 주장을 위해 다른 사람의 권리를 침범한 행위이기 때문에 긍정적으로 볼 수는 없는 행동이었다고 생각한다. 다만, 그러한 시위가 생기기 전, 혹은 그러한 시위가 발생한 이후인 지금이라도. 장애인에 관련된 처우가 개선되고 있고 우리 모두가 장애인들의 메시지에 공감하며 사회발전과 인권을 위해 필요한 부분들을 함께 고민하고 노력해 변화시켰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다.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이 있고, 장애의 종류와 정도도 다양하며 장애인 한 명 한 명의 생각과 성격, 특성이 모두 다르다. 하지만 우리는 같은 ‘사람’이고 우리 모두 장애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공감할 수 있기에, 장애인들의 처우에 대해 다시 한번 고민해 보고 옳지 못한 부분과 불편한 부분이 있다면 개선될 수 있도록 함께 나서서 목소리를 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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